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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드 원작소설/위유암향래《为有暗香来》 원작 소설

위유암향래《为有暗香来》 원작 소설 제1장

by Aki아키짱 2024. 1. 22.

 

 

遥知不是雪,为有暗香来。

멀리서 보아도 새하얀 매화가 눈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리라.

<제1장>

"의식이 끝났습니다~신방에 들어가십시오."

가늘고도 높은 목소리가 고막을 찌르자 참지 못하고 눈썹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눈을 뜨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손을 들어 시야를 가린 붉은 것을 벗기려 했지만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소리들이 귓가에 끊임없이 들려왔다.

"진왕(晋王) 전하, 귀녀를 얻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화 소저(华小姐)와 진왕은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부부로군요......"

......

엉덩이가 침상에 닿고 귓가가 점차 조용해졌을 때에야 자신이 마침내 이 몸을 장악하여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붉은 것을 떼어 내자 드디어 눈 앞에 다른 색채가 나타났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손에 들린 붉은 것은......개두(盖头)?

*개두(盖头) : 신부의 얼굴을 가리던 붉은 비단 천*

게다가 내가 입은 옷은.....봉관하피(凤冠霞帔)잖아?

*봉관하피(凤冠霞帔) : 전통 혼례에서 여인이 시집갈 때의 옷차림*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고풍스러운 방 안에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고, 뻣뻣한 목을 움직여서 보게 된 건 용모가 수려한 시녀였는데 열여섯 일곱 살 정도인 듯했다.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손의 개두를 빼앗더니 다시 덮어버렸다.

"소저(小姐 아가씨), 혼례식 날 밤의 개두는 왕야가 오셔서 벗겨주셔야 하는데 어찌 스스로 벗으신 거예요? 얼마나 불길한 일인데요!"

붉은색이 다시 시야를 점령하자 잠시 멍해졌고, 방금 전에 들었던 떠들썩한 소리들을 결합한 뒤에야 머리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내가......천월(穿越 타임슬립)한 거야?

난 이제 막 졸업한 지 1년 된 스물세 살의 여자 청년이라고.

한창 사회에 나가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칠 나이인데, 어떻게 잠깐 조는 사이에 고대(古代)로 천월을 할 수가 있지?

방금 전에 들었던 아첨과 진왕, 화 소저란 말이 생각났다......

그때 유달리 귀에 익은 시녀의 목소리가 내 추측을 철저히 확인해 주었다.

"소저, 이제 진왕부(晋王府)에 시집오셨으니 화부(华府)에 계셨을 때처럼 자유롭게 지내실 순 없을 거예요. 부인께서 제게 거듭 당부하셨어요......"

진왕, 화부......

떠보듯이 입을 열었다.

"천지(千芷)?"

"네."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감았다.

내가 정말......

욕을 퍼붓고 싶은 기분이네.

밤을 새며 소설을 읽었더니 졸려서 출근길에 졸았던 것뿐인데, 눈 뜨자마자 결혼을 했다고???

게다가 상대는 내가 밤을 새며 읽었던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인......중야란(仲夜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중요한 건 지금 내 신분이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는 거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자 다시 개두를 벗은 뒤 천지의 제지를 무시하고 침착하게 입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천지, 뜨거운 물을 좀 준비해 줘. 하루 종일 들볶였더니 몸이 피곤해."

"하지만 나중에 왕야께서......"

"그는 오지 않을 거야."

천지의 말을 끊고 곧장 거울 앞으로 가서 봉관(凤冠)을 빼기 시작했다.

*봉관(凤冠) : 혼례 때 사용하던 봉황 모양의 장식이 드리워진 관*

어쨌든 소설을 막 읽은 참이라 줄거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소설 속 여자 조연이자 가장 원한과 증오가 극에 달한 악랄한 백련화(白莲花) 화천(华浅)......

*백련화(白莲花) : 착하고 순진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꿍꿍이가 있는 여우 같은 여자*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은 그녀와 혼인하지만 그녀를 건드린 적이 없었다.

작가에게 심리적인 결벽증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걸 생각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네.

뒤에 있던 천지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무 말 없이 물러나는 걸 보니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려는 모양이었다.

거울에 비친 여인의 용모는 수려했고 연약한 자태를 한껏 드러낸 것이 역시 남자가 가장 좋아하고 여자들은 가장 싫어할 용모였다.

버드나무처럼 연약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마음은 뱀과 전갈처럼 악독한 여인.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고 난 후 여자 조연에 대해 느낀 감상이었다.

생긴 건 부드럽고 무고해 보이지만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행동해서 결국 천수를 다하지 못한 인물이었으니까.

이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목요(牧遥)로 아버지는 변경(边城 변경 도시)의 태수(太守 지방관)였는데, 치적(政绩 재직 기간 중의 업적)이 뛰어나 경성의 보직을 맡게 되었고 그때부터 남자 주인공과 깊이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아프게 하는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자 조연인 화천이 지금의 내 신분으로 아버지는 왕조의 재상이고 화씨 일족도 대대로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녀와 남자 주인공인 중야란은 어려서부터 알았고 남자 주인공의 오인 때문에 초반에는 그녀에게 마음이 기울었었다.

화천은 용모가 아름다웠고 금기서화(琴棋书画)에 두루 정통했지만, 하필이면 이 좋은 패가 아닌 형편없는 것으로 공략을 했다.

*금기서화(琴棋书画) : 금 연주, 바둑, 글씨 쓰기, 그림 그리기 등 문인의 고상한 도락*

소설 속에서 상당한 계략가인 그녀는 남자 주인공 중야란이 목요에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심해서 여자 주인공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얻은 후 온갖 모함을 하고 이간질을 했다.

이 혼례 또한 여자 조연인 화천이 계획하여 얻은 것이었다.

먼저 남자 주인공에게 약을 먹이고 정조를 잃은 척을 한 뒤 일부러 결백을 위해 자살하는 척을 해서 진왕부로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까.

혼례는 소설의 중요한 줄거리이자 소설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혼례 전 여자 조연은 순조롭게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생활을 했고, 그녀의 아버지 화 재상(华相)은 정치적 관점이 다른 여자 주인공 목요의 온 가족을 감옥에 가두는 흉계를 꾸몄다.

그러나 혼례가 끝난 후 극한까지 침체되었던 여자 주인공의 강한 반등이 시작되면서 판국은 여자 조연에게로 돌아왔다.

소설을 읽을 때 혼례식 스토리에 치를 떨면서 싫어했는데, 여자 주인공인 목요 일가가 투옥된 날이 바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조연의 혼례가 거행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순간 이 몸으로 천월할 줄이야.

그 당시에 했던 욕설들이 내 얼굴을 때리고 있는 거잖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목욕통에 앉아 있어도 줄곧 허공에 떠있는 마음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소설 속 여자 조연의 결말이 너무 비참해서 두려워......

그녀의 악독함 때문에 작가는 그녀에게 속이 시원해지는 비참한 최후를 안배해 주었는데, 난간에서 떨어진 후 수많은 화살에 심장을 꿰뚫려 죽는 결말이었다.

읽을 때는 그저 통쾌하기만 했는데 내 일이 되고 나니 생각만 해도 명치가 아픈 것 같아.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모든 언정 소설의 클리셰처럼 흉포하고 냉혈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다정한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오해로 인해 여자 조연을 사랑한다고 생각해 그녀를 보호했지만, 나중에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여자 조연의 진면목을 간파한 뒤 철저히 뉘우치며 여자 조연에게 가차없이 굴었다.

소설 속 줄거리대로 지금까지 전개되었다면 그 다음은 여자 주인공 일가가 참수되는 날일 테고, 불과 열흘 뒤 그들의 죄명은 화상이 직접 조작한 '반역'일 것이다.

온 가족의 보호 덕에 투옥되지 않았던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에게 도움을 청하려다가 중야란과 항상 자신을 좋은 언니라고 부르며 속였던 화천의 혼례를 보게 되었다.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순간 그녀의 종적이 드러났고, 이를 눈치챈 남자 주인공이 그녀를 숨겨주었다.

그 후 자신의 가족이 오문(午门 옛 자금성의 정문)에서 참수 당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여자 주인공은 울분을 참으며 진왕부에 숨어들었고, 남자 주인공과 깊이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아프게 하는 관계를 지속하는 한편 진상을 추적하며 조사했다.

그렇게 여자 주인공이 가진 후광의 보호 속에서 그녀는 화씨의 죄증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남자 주인공의 마음도 열었다.

결국 남자 주인공의 도움으로 황제를 알현해 진술하게 되었고, 악행을 한 화씨 일족도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되어 남자는 참수당하고 여인은 노예가 되었다.

물 한움큼을 얼굴에 뿌리고 난 후에야 머릿속의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좀 나아졌다.

좀 더 일찍 천월하든가 좀 더 늦게 천월했어야지.

하필이면 혼례날 밤으로 천월을 하냐고.

차라리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꿰뚫는 그 순간으로 천월을 해서 통쾌해지는 게 나았을 텐데.

지금 여자 조연은 이미 나쁜 짓을 다 저지른 상황이니 난 그냥 죄를 뒤집어쓰려고 온 거잖아.

복은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죄명은 내가 다 짊어져야 하다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네.

내가 얼마나 용서할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에 처해야 되는 거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서 목욕통의 물이 다 식은 줄도 모르고 있을 때 병풍 뒤에서 들리는 천지의 목소리가 뱃속에 가득하던 포악한 기운을 끊어 버렸다.

"소저......왕......야께서 전청(前厅 바깥 대청)에서 술을 너무 많이 드셨대요. 소저를 놀라게 하실까 봐 염려되신다고 오늘 밤은 서방(书房 서재)에서 쉬시겠다는 전갈을 보내셨어요."

역시 소설이랑 같네.

지금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흔적을 발견했을 테니 둘이서 쓰라린 연기를 하고 있겠지.

일단 그들은 내버려 두고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은 뒤 생각을 정리하자.

여자 조연의 일가가 벌을 맏아 마땅하다지만 어쨌든 나는 무고하잖아.

소설 내용대로 흘러가게 둘 순 없어.

초반에 화천은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이때의 목요는 이미 그녀의 진면목을 간파했으니 내가 아무리 목요에게 해명하고 사과한다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 앞에 무릎 꿇고 배를 갈라 자진한다 해도 용서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나도 천천히 도모하는 수밖에.

그리고 남자 주인공 중야란이 화천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어렸을 때 만났던 낭자를 그녀로 착각했기 때문이었어.

그 일은 당사자인 목요와......나만 알고 있는 일이니 반드시 내가 중야란에게 말해야 해.

목요의 입에서 말이 나온다면 아마 난 더 참혹하게 죽을 거야.

하지만 그 일은 지금 서두를 필요가 없어.

어쨌든 소설에서는 이백여 장이나 여자 주인공을 학대한 뒤에야 그에게 알려주니까.

지금의 내겐 시간이 있으니 적당한 기회를 찾아서 말하면 돼.

적어도 중야란이 마음에 가책을 느끼고 날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그때 그 일을 말하면 상쇄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 지금 달려가서 말을 한다면 흉포한 남자 주인공이 직접 날 베어버릴 테니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일이 되겠지.

소설에서 지금까지 전개된 내용을 생각하면 백여 장쯤 지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백여 장의 시간이 있고 무언가를 바꿀 시간이 있어.

앞날을 예측할 순 없지만 현실에 만족하는 거야.

나는......살고 싶으니까.

이건 내가 천월한 후에 유일하게 한 생각이었다.